인류의 우주 탐사가 장기화되고, 유인 우주선의 임무 범위가 지구 저궤도를 넘어 달, 화성 등 심우주로 확장되면서, 우주선 내 인공지능(AI)의 활용은 단순한 자동화 도구를 넘어 필수적인 생존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우주라는 극한 환경에서는 인간의 실시간 대응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기 쉬우며, 통신 지연, 장기 체류, 제한된 자원 등 복합적인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AI는 항법 보조, 시스템 정비, 의료 진단과 같은 핵심 분야에서 인간을 보조하거나 대체함으로써 임무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본문에서는 우주선 내 AI 활용 기술을 항법보조 시스템, 정비 및 유지관리 자동화, 그리고 원격 의료 진단 지원이라는 세 가지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항법보조 시스템에서의 인공지능 역할
우주선의 항법(Navigation)은 단순히 궤도 계산을 넘어서 복잡한 궤도 수정, 추진 제어, 자율 비행 판단 등을 포함한다. 기존에는 지상 관제소의 명령에 따라 우주선이 수동적으로 조작되었지만, 심우주 탐사의 경우 통신 지연이 수십 분에 달할 수 있어, 자율적 판단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 기반 항법 보조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NASA는 ‘오토노모스 내비게이션(Autonav)’ 기술을 통해 딥러닝 알고리즘이 별의 위치, 자이로센서, 관성계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여 실시간으로 궤도를 예측하고 수정하는 기술을 실험 중이다. 또한, ESA는 ‘AI 루터(AI Router)’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다중 센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주선이 자체적으로 최적 경로를 계산하고 추진력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또한 장애물 회피, 연료 절약을 위한 궤적 계산, 중력 어시스트 활용 등을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하여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특히 자율 착륙 기술에서는 AI가 지형 정보를 분석하고, 착륙 후보지를 평가하며, 미세한 자세 제어를 수행하는 등 필수 역할을 한다. 화성 탐사선 퍼서비어런스는 머신러닝 기반의 지형 분석 알고리즘을 통해 자체적으로 착륙 경로를 조정했으며, 이는 향후 유인 우주선에도 확대 적용될 전망이다. 향후에는 AI가 우주선 내부 구조의 변형, 궤도 내 미세 중력 환경, 인근 우주 물체의 영향을 동시 고려하는 고차원 항법 판단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AI는 단순한 항법 계산을 넘어 ‘우주선의 판단 능력’을 구현하는 핵심 기술이 되고 있다.
정비관리 자동화: 자율 시스템 감시의 핵심
우주선은 폐쇄형 생태계이자 다층적인 기술 집약체로, 다양한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하며 연속적인 유지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유인 탐사에서는 인력이 제한되며, 장기 임무일수록 정비에 따른 부담과 위험이 가중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은 시스템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에 탐지하며, 예측 정비를 수행하는 기능으로 활용된다. NASA의 ‘사브르(SABRE)’ 시스템은 우주선 내 센서 데이터를 AI가 분석하여 전력, 온도, 공기압, 방사선 노출 등 수십 가지 항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이상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기술이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여, 정상 상태와 비정상 상태를 구분하고, 고장이 발생하기 전의 미세한 징후를 포착해 선제적 대응을 가능케 한다. 이뿐만 아니라, AI는 정비 로봇과 협업하여 물리적 조작까지 수행할 수 있다. 독일 DLR의 ‘저스트인타임’ 시스템은 정비용 로봇 팔과 AI 비전 시스템을 결합해, 전자 회로의 수리, 배관 연결, 모듈 교체를 수행할 수 있으며, 인간 우주비행사의 부담을 크게 줄인다. 특히 폐쇄형 시스템에서 필터 교체, 열교환기 세척, 오염 탐지 등은 AI 기반 로봇이 정기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생명유지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정비 분야에서의 인공지능은 또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개념과 결합된다. 이는 우주선의 모든 시스템을 디지털 환경에서 복제하여, AI가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조건에서의 시스템 반응을 미리 예측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실제 시스템에 무리를 주지 않고도 유지보수 전략을 검토할 수 있으며, 긴급 상황에 대한 대응 훈련도 가능하다. 결국 정비 분야에서의 인공지능은, 우주선의 ‘건강’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인간 없이도 독립적으로 유지하는 시스템의 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의료진단 및 응급대응 지원 AI 시스템
장기간 우주 체류 시 인간의 건강 문제는 가장 민감하면서도 해결이 어려운 요소 중 하나다. 무중력 환경은 근육 위축, 골밀도 감소, 면역력 저하, 심혈관 기능 변화 등 다양한 생리적 변화를 유발하며, 이에 대한 실시간 진단과 응급 대응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의사나 의료진의 상주가 어려운 우주선 내에서는 인공지능 기반 의료 시스템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NASA와 IBM은 ‘왓슨 포 헬스(Watson for Health)’ 프로젝트를 통해 우주선 내 센서와 연동된 AI 진단 시스템을 연구 중이며, 이를 통해 체온, 심박수, 혈압, 혈액 성분 등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질환 위험도를 분석하여 조기 경고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AI는 증상 기반 진단 외에도 행동 분석, 수면 패턴, 정신 건강 상태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승무원의 건강 리스크를 포괄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음성 인식 기반의 의료 챗봇 시스템도 개발되어, 승무원이 증상을 말로 설명하면 AI가 의심 질환을 분류하고, 필요한 조치를 단계별로 안내하는 방식이 테스트되고 있다. 응급 상황 발생 시에는 의료 AI가 자동으로 의약품 조제 로봇을 작동시키거나, 휴먼 어시스턴트 로봇을 통해 응급 처치를 수행할 수 있으며, 심각한 경우에는 지상 의료진과의 연결을 통해 원격 수술 가이드를 제공받는 시스템도 준비 중이다. 또 다른 발전 방향은 ‘유전자 기반 건강 관리’로, AI가 승무원의 유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질병 취약성을 분석하고, 맞춤형 식이요법, 운동처방, 약물 조절을 수행하는 정밀의료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우주 탐사뿐 아니라 지구의 극한 환경, 오지 의료, 원격 진료 등에도 적용 가능하여, 인류 전체의 건강 관리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의료 분야에서의 AI는 생존의 전제 조건이자, 인간의 신체와 생리의 파수꾼으로 기능하고 있다.
우주선 내 인공지능의 활용은 단순한 기술적 편의가 아닌, 생존과 안전, 임무의 성공률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항법 보조를 통한 자율비행, 정비 자동화를 통한 자원 절약, 의료 AI를 통한 건강 관리까지, AI는 우주 환경에서 인간을 보완하고 보호하는 ‘제2의 승무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향후 AI는 우주선 설계 초기 단계에서부터 통합된 시스템으로 적용될 것이며, 이는 인류의 우주 거주 가능성과 우주경제 시대의 현실화를 앞당기는 기반 기술이 될 것이다.